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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로 완전히 사라질 운명의 예지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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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42회 작성일 21-02-07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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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입주의 기약도 없다! 올 2월까지 상가 비워야, 수십년간 이어온 노점들에겐 아무런 보상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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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예지귀금속시계도매상가를 가다 


예지귀금속시계도매상가(이하 예지상가) 시대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예지상가는 70년대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시계 집단 상가로, 80년대에는 시계 뿐 아니라 귀금속까지 아우르는 국내 최대의 혼수용품 상가로 명성을 날렸다. 

한데 이 도매상가 입주업체들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로부터 오는 2월까지 모든 공간을 비워달라는 통고를 받아놓은 상태다. 서울시는 이미 지난 2004년부터 예지동 재개발을 추진해왔다.

과거의 영화를 뒤로 하고 사라지기 직전의 예지상가를 찾아갔다. 


2021년 새해 벽두 1월 4일 오후 3시경 예지상가를 찾았다. 

혹한의 날씨라보니 벌써부터 노점들은 서서히 철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남아 있는 사람들보다 떠나간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해서 빈 상가들이 95%가 넘었다. 


“60여 년 전부터 예지상가와 연을 맺었지. 군대가기 전이었는데, 그 때는 청개천 복개 전이었어. 그래서 청개천변 노점에서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지.”

이른바 예지동 골목 사거리라고 하는 노른자위 지점에서 한성사라고 이름 붙여진 노점을 운영해온 김강승 대표의 얘기다. 

그는 군대가기 전 잠시 청계천변과 인연을 맺었다가, 군 제대하고 7년여 간 시계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됐다. 


“당시 애가 둘이었는데, 시계 회사에서 받는 급여가 너무 적었어. 차라리 장사를 하자 하고 이 곳에 터를 잡았지. 

이제 내 나이 팔십이니 이 지점에서만 거의 50여 년을 보냈구먼.”

손님이 아무리 줄었다 해도 코로나19가 오기 전만 해도 두 내외 용돈 벌이 하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나마 거의 손님이 끊겼다. 게다가 혹한까지 찾아오니 이제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의 눈매가 아스라해졌다.  


“한 때는 이 골목이 얼마나 미어졌는데... 저쪽 세운 상가에서부터 사람들이 들고, 사람에 밀려밀려 이 골목 4거리까지 왔다가

 계속 광장 시장 쪽으로 밀려가는 사람들도 있고, 또 이 쪽사거리에서 옆 골목으로 새 나가는 사람들도 있고...”

1.5m 남짓 하는 그의 노점 좌판은 그나마 넓이가 큰 축에 속했다. 당시에는 사람 한 사람 앉을 공간만 있으면 노점이 들어서게 마련이었다.

 그 앞에 좌판 하나만 펼치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좌판들이 예지동 골목 사이사이마다 수없이 들어섰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했던지, 그렇게 작은 노점들이 나중에 사고팔고 할 때는 권리금이 만만치 않았다. 


이 노점들이 처음엔 시계를 위주로 팔곤 했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노점들 중 한둘이 은 가락지 같은 장신구들을 갖다 놓고 팔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물건들이 갖다 놨다 싶으면 바로바로 팔려나가곤 했다. 

이렇게 해서 예지동 골목 사람들이 다변화되기 시작했다. 계속 시계만 파는 사람, 시계와 귀금속을 파는 사람, 귀금속만 파는 사람.....


“1974년 이 곳에서 매장을 냈을 때만 해도 귀금속 매장이라곤 우리 외에 딱 2개 밖에 없었어. 동성사, 경성당. 그 중에서도 우린 공장까지 같이 했으니 좀 더 규모가 컸었지”

강보사 이상오 대표의 얘기다. 그 때엔 이 곳 예지상가에 시계 업체들 천지였다. 그런데 이 대표가 이 곳 상가에 들어선 지 5-6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귀금속 업체들이 늘기 시작했다. 

70년대 말 광산 개발로 채굴된 금의 판매처로 각광을 받으면서, 예지 귀금속업계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 상가 맞은 편 종묘 공원이 개발되면서 그 인근에 있던 귀금속 업체들도 예지상가 쪽으로 옮겨오기도 했다.

이같은 요인들에다 80년 대 부동산 개발 붐이 일면서 예지상가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됐다. 


“하도 예지 상가 쪽에 사람이 몰리고, 매장이 많이 들어서다보니 급기야는 귀금속 중개인들이 골목 어귀의 금풍여관이라고 있었지. 

여기에 방 하나씩을 잡고 사람들을 만나고, 영업을 하더라고. 예지상가의 황금기라고 볼 수 있지.

예비 신랑신부들과 그 가족들이 세운상가에서 전자 제품을 사고, 이곳에서 금붙이들이랑 시계를 사고, 그리고 동대문 시장에서 이불, 

그릇 등 혼수용품을 사고... 정말 엄청난 혼수용품 상가 벨트가 형성됐던 거지”

이렇게 예지상가 골목이 포화상태가 되자, 서서히 업체들이 종로 3가 쪽으로 넘어가는 업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때 종로 3가 쪽으로 넘어가는 업체들은 주로 제조업체들이나 수리업체, 도금업체 들이었다. 상대적으로 종로3가 쪽이 임대료도 저렴했고, 공간도 확보하기가 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종로 3가 대로변 쪽으로 오픈 상가들이 하나둘 분양을 하기 시작했지. 

그리고 이런 오픈 상가들에 수도권 변두리 쪽의 귀금속점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어. 우리도 91년도에 그 쪽으로 이전하려고 하다가 사정이 생겨서 가지 못하긴 했지”

이 과정이 바로 현재의 종로3가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는 첫 시작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예지상가의 융성이 종로3가 단지 형성의 첫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90년대 중반이 되면서 예지 상가는 서서히 침체기에 빠져들게 된다. 

바로 당시부터 시작된 삐삐(무선 호출기) 서비스와 뒤이어 등장하기 시작한 핸드폰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아울러 1997년에 터진 IMF도 큰 영향을 미쳤다. 


“IMF를 맞으면서 당시 국내 대형 시계 회사들이 대부분 부도를 맞게 됐지. 그러면서 일본이나 스위스 브랜드들이 그 빈 자리를 차지하게 됐는데 

이들은 예지상가 업체들과 거래하기보다는 백화점 입주업체들하고나 거래를 하려고 했던 거고. 그러면서 싸고 좋은 시계들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게 된 거지”

2006년부터 ‘종로4가 시계·귀금속도매상 번영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정우상사 정권천 대표의 얘기다. 


정 대표는 79년부터 아버지의 시계 매장을 이어받아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면서 예지상가의 황금기를 같이 했고,

 이 후 지난 2004년 공고된 예지상가 재개발 계획으로 인해 끝내 예지 상가를 떠나야 했다. 


“서울시의 예지상가 지역을 포함한 ‘세운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공고와 함께 예지상가의 많은 업체들이 지역을 떠나야 했어. 

마침 재개발 추진을 맡은 서울주택도시공사가 대체 상가로 현재의 세운스퀘어 상가를 제공했기 때문에 많은 업체들이 이쪽으로 넘어오게 됐지.”

2007년 정 대표와 함께 세운스퀘어 상가로 넘어온 업체들은 약 280여 곳이다. 그리고 일부 업체들은 일정한 이주 보상비를 받고 종로 3가 지역이나 타 지역으로 흩어져 갔다. 


“우리가 그 지역에서 옮겨올 때까지만 해도 5년 내에는 재개발이 확실히 끝날 것이라고들 예상했었지. 

하지만 그로부터 어언 14년이나 지났네. 도시 재개발이 지연되면서 애꿎은 예지 상가만 오랫동안 을씨년스러운 상가로 남게 된 거지”


서울시 개발 계획이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중간에 종묘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그래서 초고층 개발 계획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그렇지만 종로구청은 지난 2018년 다시 재공고를 하면서 올해부터 공사를 시작해 23년까지 공사를 완료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사업시행을 맡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2월 말까지 모두 예지동을 떠나 달라고 통고를 했지만, 

우린 떠날 데가 없어. 매장 임대를 하여 장사를 해온 사람들이야 대체 상가를 SH공사가 제공해주거나 이주비를 주지만, 우리 같은 노점들은 그냥 무작정 나가라는 거야.”

예지골목 사거리에서 50여 년째 노점을 해온 김강승 대표처럼 지금도 이 곳에서 노점을 하고 있는 이들은 약 100여 곳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SH공사는 이들에게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자리를 비워달라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점을 하고 있는 이들은 “전통적으로 수십년 동안 이 곳에서 영업을 해 왔다면, 개발을 추진하고자 하는 정부 입장에서 당연히 피해를 보상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하소연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머지 않아 SH공사에 의해 강제로 쫓겨나게 될지도 모른다’라며 불안에 떨고 있다. 


지난 2018년 발표된 세운4구역 사업 시행계획에 따르면 3만 2223.70㎡ 넓이의 이 곳에는 최대 18층 높이 건물 9개 동(총연면적 30만㎡)이 들어서게 될 예정이다. 

업무시설 5개 동, 오피스텔 2개 동, 호텔 2개 동을 짓는다. 


그리고 저층부인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는 판매시설이 자리잡는다. 

한데 원래 서울시는 이 지역을 ‘제조업 기반의 4차 산업혁명의 거점으로 변신시킬 것’이라는 화려한 청사진을 내걸은 바 있었다.


하지만 현재 예지상가에 남아 있거나, 또 떠나 있어도 다시 개발 후 이 곳으로 되돌아오고 싶어 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서울시의 이같은 청사진은 도저히 이뤄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예지상가 번영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정우상사 정권천 대표는 “떠난 이들에게 SH공사는 개발 후 다시 입주를 할 때 

혜택을 부여한다는 약속을 전혀 해준 바 없다”라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입주를 하려야 천문학적인 입주 비용을 내고 누가 들어올 수 있겠느냐”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미래의 기약도 없이 예지상가가 완전히 사라져 가고 있는 매우 씁쓸하기 그지없는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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