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통 금공예 장인을 찾아서> 김영창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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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귀금속보석신문 댓글 0건 조회 1,379회 작성일 20-07-0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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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전의 전통 누금 공예 기술 재현

3대째 이어온 전통공예 장인의 길, “하루빨리 누금 기술 이을 전수자 나타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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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전통공예 장인의 길을 잇고 있는 김영창 장인


경주 부부총에서 발견된 8.7cm 길이의 국보 90호 금귀걸이는 1500여 년 전 신라 시대의 놀라운 금세공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상단 커다란 둥근 고리 표면의 육각형 모양 무늬 안에 4엽 혹은 3엽의 꽃이 표현돼 있다. 그리고 이같은 꽃 하나하나에 금실로 붙인 0.7mm 크기의 미세한 금 알갱이가 다닥다닥 붙여져 있다. 한데 이 귀걸이에 붙여져 있는 금 알갱이 수가 무려 6천여 개나 된다고 한다.   

더욱이 이 귀걸이는 가운데를 빈 공간으로 하여 무게를 가볍게 한 귀걸이다.


그렇다면 가운데가 텅 빈 귀걸이 표면에 어떻게 해서 그렇게 미세한 금 알갱이를 원형 그대로 붙일 수 있었을까. 오늘날에도 신비스러운 이같은 세공 기술을 누금세공기법(鏤金細工技法)이라고 부른다.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시작하여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그리스에서 더욱 발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같은 고래의 누금세공기법을 오늘에 다시 복원한 이가 있다. 바로 누금공예연구소 김영창 장인이다. 


고도의 손기술 필요한 누금 공예 기술

“70년대에 일명 멍게반지, 꽃반지 같은 이름의 주얼리들이 유행한 적이 있었어요. 금알갱이들을 촘촘하게 붙여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입체감이 있고, 매우 아름다워 보이는 반지들이었죠.

한데 이같은 금알갱이를 붙이기 위해 저순도의 땜을 썼다는 게 알려지면서 순식간에 시장에서 퇴출 돼 버렸어요. 

그 무렵 우연히 국립박물관에 갔다가 이같은 미세한 금알갱이를 재물 땜 방식으로 만든 전통 공예 보물들을 접할 수 있게 됐어요. 과연 그 옛날에 어떻게 저러한 보물들을 만들 수 있었을까”


현대에 들어서서도 미세한 금알갱이들을 재물땜 방식으로 금 표면에 붙이는 작업은 매우 어렵다. 섭씨 1천도 이상의 열을 가한 상황에서 작은 금 알갱이를 붙이는 작업인데, 찰라적인 손놀림과 불세기 조절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금 알갱이들이 표면에 눌러 붙어버리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때로는 수천 개의 금 알갱이를 붙이는 작업을 하곤 한다. 한데 그 과정에서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면 안 된다. 고도의 집중력과 손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귀금속 전통 노리개 공예 기술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김 장인은 원래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버지(고 김일룡 옹)가 갑자기 일손이 부족하게 됐으니 꼭 도와줘야 되겠다라고 제안을 해 오셨다. 그렇게 해서 일순간에 귀금속 공예 분야에 입문한 그는 빠르게 귀금속 공예 기술을 익히게 됐다. 


아버님의 엄한 지도하에...

“아버지는 전통 귀이개를 만들 때에도 자로 길이를 재서 만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대강 대강 재료를 눈가늠으로 잘라서 만드는데, 만들고 난 후 길이를 재보면 희한하게도 그 길이가 거의 일치하곤 했습니다.”


엄한 아버지의 지도 하에 그의 기술은 일취월장하게 된다. 그런 한 켠에서 그는 전통 누금 공예 기술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하게 됐다. 이윽고 40여 년간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그는 이제 거의 고래의 누금공예 기술을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그는 요즘도 꾸준히 전통 보물을 전래의 누금공예기법을 통해 하나하나 계속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하루빨리 이같은 기법을 전수할 전수자가 나타나길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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