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달의 귀금속보석인] 이치호 금장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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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귀금속보석신문 댓글 0건 조회 1,557회 작성일 19-04-2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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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각인은 귀금속제품을 작품으로 만드는 일”

이치호 대표, 레이저각인 국내 세번째로 문 열고 자부심 갖고 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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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 각인은 귀금속보석 제품을 ‘작품’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지난 2003년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레이저각인을 시작한 이치호 금장수 대표는 레이저각인에 대해 이처럼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치호 대표는 다양한 일을 해 온 끝에 레이저각인업계에 들어오게 됐다, 그는 컴퓨터판매업체에서 같이 일했던 상사의 소개로 지난 1996년 귀금속제조공장인 거북사의 무역부에 입사하게 된다.

그런데 루비 등 보석을 분류하는 일을 직원들과 함께 하며 그는 몇 천개의 보석이 각각 다른 것을 보고 작은 우주를 접하는 듯한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귀금속보석업계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1년 후 그는 종로와 수도권의 귀금속업계 구석구석을 누비며 고객이 원하는 귀금속을 소매상에 공급하는 귀금속보석 중간상인으로 변신하게 된다.

중간상인으로 일하면서 아무리 찾기 어려운 제품도 10군데 20군데를 가리지 않고 필사적으로 찾아 다녔다. 소매상들이 그에게 찾기 어려운 제품을 찾아달라고 맡길 정도가 됐다.

그러면서 각 제품별로 각인이 어느 위치에 어떤 크기로 들어가는지 자연스럽게 익히게 됐다.

각인을 하는 가게를 유심히 보던 그는 일거리가 잔뜩 쌓여있는 것을 보고 사업성이 있겠구나 싶었다. 그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고가였던 레이저각인기를 구입해 본격적으로 레이저각인을 시작하게 됐다.

종로에서 세 번째로 레이저기계를 활용한 귀금속각인 사업을 벌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중 한 업체는 자체공장 제품들만 작업을 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외주업체로서는 두 번째로 레이저로 각인을 하게 됐다. 당시에는 레이저각인을 하는 곳이 워낙 없었던 터라 일이 쉴 새 없이 밀려 들어왔다.

다른 경쟁업체는 제품을 맡기고 난 후 하루가 지나야 제품을 찾아갈 수 있었지만 이치호 대표의 레이저각인 업체는 2시간이면 물건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는 그러한 신속성이 주고객층인 도매상들로부터 호응을 얻기도 했을 것이라고 그는 당시 호황기를 누린 또다른 이유를 얘기했다.

그뿐 아니라 그는 고객들이 대략적인 아이디어만 알려주면 구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거나 이미지 수정 시 조언을 해서 보기에도 좋고 완결성 있는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제품의 여백을 아름답게 꾸며 제품에서 더 나아가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그가 이러한 사명감으로 일했지만 레이저각인업체들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된 데다 기계 고장이 자주 발생하는 등 안 좋은 상황들이 겹쳐서 그는 레이저각인 일을  중단했다. 그리고 4년 동안 다른 일들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다른 일에 종사하면서, 10년 동안 종사해 온 레이저각인 사업에 대해 전혀 미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레이저 각인을 통해 제품의 디자인을 완성했을 때 느꼈던 뿌듯함과 자부심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지난 해 레이저각인 업계로 돌아와 금장수라는 이름의 사업체를 차렸다. 그런데 그 사이 레이저각인 업체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예전만큼 주문이 많지는 않지만 그는 실력으로 승부해 나가고 있다.

앞으로 그는 3D프린터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귀금속 제조공정의 첨단화를 이끌어나갈 계획이다.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들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고객들이 알아봐주고 찾아와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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