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달의 귀금속보석인] 이치호 금장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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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귀금속보석신문 댓글 0건 조회 2,935회 작성일 19-04-2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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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각인은 귀금속제품을 작품으로 만드는 일”

이치호 대표, 레이저각인 국내 세번째로 문 열고 자부심 갖고 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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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 각인은 귀금속보석 제품을 ‘작품’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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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레이저각인을 시작한 이치호 금장수 대표는 레이저각인에 대해 이처럼 자부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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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호 대표는 다양한 일을 해 온 끝에 레이저각인업계에 들어오게 됐다, 그는 컴퓨터판매업체에서 같이 일했던 상사의 소개로 지난 1996년 귀금속제조공장인 거북사의 무역부에 입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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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루비 등 보석을 분류하는 일을 직원들과 함께 하며 그는 몇 천개의 보석이 각각 다른 것을 보고 작은 우주를 접하는 듯한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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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귀금속보석업계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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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후 그는 종로와 수도권의 귀금속업계 구석구석을 누비며 고객이 원하는 귀금속을 소매상에 공급하는 귀금속보석 중간상인으로 변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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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상인으로 일하면서 아무리 찾기 어려운 제품도 10군데 20군데를 가리지 않고 필사적으로 찾아 다녔다. 소매상들이 그에게 찾기 어려운 제품을 찾아달라고 맡길 정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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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각 제품별로 각인이 어느 위치에 어떤 크기로 들어가는지 자연스럽게 익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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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인을 하는 가게를 유심히 보던 그는 일거리가 잔뜩 쌓여있는 것을 보고 사업성이 있겠구나 싶었다. 그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고가였던 레이저각인기를 구입해 본격적으로 레이저각인을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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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서 세 번째로 레이저기계를 활용한 귀금속각인 사업을 벌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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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중 한 업체는 자체공장 제품들만 작업을 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외주업체로서는 두 번째로 레이저로 각인을 하게 됐다. 당시에는 레이저각인을 하는 곳이 워낙 없었던 터라 일이 쉴 새 없이 밀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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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경쟁업체는 제품을 맡기고 난 후 하루가 지나야 제품을 찾아갈 수 있었지만 이치호 대표의 레이저각인 업체는 2시간이면 물건을 찾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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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러한 신속성이 주고객층인 도매상들로부터 호응을 얻기도 했을 것이라고 그는 당시 호황기를 누린 또다른 이유를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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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라 그는 고객들이 대략적인 아이디어만 알려주면 구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거나 이미지 수정 시 조언을 해서 보기에도 좋고 완결성 있는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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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의 여백을 아름답게 꾸며 제품에서 더 나아가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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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러한 사명감으로 일했지만 레이저각인업체들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된 데다 기계 고장이 자주 발생하는 등 안 좋은 상황들이 겹쳐서 그는 레이저각인 일을  중단했다. 그리고 4년 동안 다른 일들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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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게 다른 일에 종사하면서, 10년 동안 종사해 온 레이저각인 사업에 대해 전혀 미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레이저 각인을 통해 제품의 디자인을 완성했을 때 느꼈던 뿌듯함과 자부심도 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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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 해 레이저각인 업계로 돌아와 금장수라는 이름의 사업체를 차렸다. 그런데 그 사이 레이저각인 업체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예전만큼 주문이 많지는 않지만 그는 실력으로 승부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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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그는 3D프린터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귀금속 제조공정의 첨단화를 이끌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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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들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고객들이 알아봐주고 찾아와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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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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