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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창간특별 인터뷰 | 장신구 아트공예가, 국민대 김승희 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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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귀금속보석신문 댓글 0건 조회 258회 작성일 23-11-0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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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구 공예 포함, 금속 공예 1세대 열어온 선구자

정해진 길 따라가기보다 언제나 나의 길 고수하며,

     김승희만의 장신구 및 금속 공예 세계 새로이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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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교수는 금속 공예라는 분야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한국 현대 금속 공예의 명맥을 이어온 1세대 공예가이자, 36년간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정년 퇴임 후, 현재는 ‘소연’이라는 주얼리 카페를 운영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살아온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질 만큼, 아직도 그의 목소리는 낭랑하고 활기에 차 있었다. 
그는 그릇으로 시작해 설치 작업과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회화, 조각, 설치 등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작품 활동을 활발히 이어오고 있다. 
그가 금속 공예가로 50년 넘게 외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만의 길을 선택해 끊임없이 시도했던 자유로운 모험 정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의 삶을 통해 한국 장신구와 금속공예의 현주소를 돌아보고자 한다

“자연스럽게 깨진 원석 좋아해”
김승희 교수가 만든 장신구는 마치 풍경과 대화를 나누듯 살아 움직이는 작은 조각 같다. 그동안 장신구 아트 공예가로서 전통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면서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남다른 시각으로 현대적인 장신구 작품 세계를 선보여 온 그는, 금속에 옻칠해 색을 입히고, 그림을 그리고 옥과 민화를 접목시키는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를 해오며, 표현 영역의 지평을 넓혀왔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스럽게 깨진 원석을 좋아해요. 다이아몬드도 깨진 게 얼마나 우아하고 예쁜지 몰라요.”
인터뷰 초입부터 기자는 김 교수의 이 같은 말에 깜짝 놀랐다. 어떻게 깨진 보석에 대해, 기존 관념과는 다른 이런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김 교수의 이 같은 기상천외한 접근 방식은 금속 공예 분야에서나 그 연장선에서의 장신구 공예 분야에서나,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쓸모없다고 버리는 재료가 있다면 그것을 가져와 김승희만의 공예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는 이렇게 깨고, 칠하고, 쌓으며 다양한 기법과 재료들을 직접 몸으로 체득한 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재현하는 작업에 몰두해 왔다. 이렇다 보니 그는 자신의 장신구 작품들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주얼리를 잘 몰라요. 연결은 되어 있지만, 일반적인 주얼리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어요.”

‘밑 빠진 단지 브로치’ 대 히트! 
김 교수가 자신만의 장신구를 만들기 시작한 건 우연한 계기였다. 1987년도 ‘하염없는 생각’이라는 설치 입체 조형 시리즈로 개인전을 발표하며, 밑 빠진 단지 형태의 금속 오브제(작가의 재해석과 새로운 의미 부여로 미술 작품이 된 물건)를 선보였다. 
밑이 없는 단지에 갈대를 꽂아 놓으면 갈대가 밑으로 삐져나와 보이는 식이었다. 그런데 보편적인 단지를 색다르게 재해석한 그의 전시회는 “김승희만의 공예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라는 찬사가 쏟아져 나오며 크게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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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놀랍게도 당시 덩달아 주목을 받게 된 작품이 있었는데, 「삼색단지 브로치」였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 똑같은 형태의 작은 단지 브로치를 만들어 선보였는데, 이게 대 히트를 친 것이다. 
‘독특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브로치’라며 부유층 사모님들로부터 주목받으면서, 순식간에 우리나라 장신구 분야의 선구자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 
장신구 분야에서 이렇게 새로운 전환점을 맞은 그에게 사람들은 그가 만든 브로치에 보석을 가져와 세팅해 달라며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는 자연스럽게 보석을 비롯한 다양한 장신구 소재들을 접하게 됐다. 그리고 기존의 경계를 넘어선 완전히 새로운 관점의 각종 장신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옥과 돌 그리고 금속의 조화가 돋보이는 새 주얼리의 세계
80년대 「삼색 단지」와 「가을 주머니」와 같이 풍경을 담은 입체 형태의 정물 시리즈를 거쳐 90년대에는 천연석과 금속의 대비를 결합한 「멍청이 나무」, 「미친 나무」 그리고 2000년대 이르러 「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 「풍경」 작품에서는 옥과 돌 등의 다양한 소재와 색채를 활용해 보석을 금속과 조화시켜 새로운 장신구의 세계를 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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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박힌 보석 평가 기준 단호히 거부
김 교수만의 장신구 세계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국민대 제자 중 한 명이 김 교수에게 말했다. 그의 아버지가 태국으로 건너가 국제적인 커런덤(루비, 사파이어 등 보석) 기업의 회장으로 계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제자의 아버지로부터 제안이 왔다.
“딸의 은사님께 질 좋은 보석을 유리한 조건으로 공급하고 싶다”
하지만 김 교수는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돈이야 많이 벌 수 있었겠지만, 거절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만들어 낸 평가 기준(4C 기준) 만으로 보석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인 상식과 잣대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러프(처리 전)한 상태의 보석을 더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송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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